동남아 나라별 음식/Philippines

Bibingka – 성탄의 냄새로 기억된 쌀 케이크

아시아음식연구원 2025. 5. 15. 08:43

12월 중순, 필리핀 마닐라의 새벽은 의외로 서늘했다. 한 해의 끝자락, 도시 곳곳엔 성탄 분위기가 가득했고, 나는 현지 친구의 권유로 새벽 미사인 ‘Simbang Gabi’에 함께 하게 되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의식이 끝나고 나왔을 때, 공기 속에는 묘한 냄새가 퍼져 있었다. 단맛과 불향이 섞인 그 냄새는 어느 노점상에게로 발길을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Bibingka’를 마주했다. 종이 접시 위에 바나나잎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엔 반쯤 부푼 케이크 같은 노란 떡이 담겨 있었다. 표면엔 강판에 간 치즈와 코코넛, 삶은 오리알 반쪽이 얹혀 있었고, 바닥은 불에 직접 닿아 살짝 탄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첫 한입.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했고, 단맛이 은은했다. 치즈의 짭조름함과 코코넛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만나며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쌀가루 특유의 질감은 케이크보다 약간 쫀득했고, 바닥의 바나나잎에서 풍기는 향이 이 모든 맛을 감싸 안았다.

Bibingka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의 상징이자, 필리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성탄 전야의 따뜻한 전통이었다.

Bibingka의 유래와 문화

Bibingka는 ‘Kakanin’이라 불리는 필리핀 전통 떡 계열 음식 중 하나다. ‘Kakanin’은 쌀(Kan-in)에서 유래된 단어로, 주로 찹쌀이나 쌀가루를 이용해 만든 간식을 총칭한다. 그 중에서도 Bibingka는 성탄절 전후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간식 중 하나로, 루손 지역에서 특히 인기 있다.

이 음식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영향과 현지 식재료가 결합되어 탄생한 하이브리드 푸드다. 원래 스페인의 케이크나 빵처럼 구워지는 디저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쌀가루와 바나나잎을 사용하며 독특한 현지 버전으로 정착했다.

보통은 쌀가루 반죽을 바나나잎을 깐 작은 그릇에 부은 후, 숯을 그릇 위와 아래에 동시에 올려 천천히 구워낸다. 이중 열 조리는 반죽을 골고루 익게 만들고, 바닥에 남는 살짝 탄 자국이 Bibingka 특유의 구수한 풍미를 완성한다.

전통적으로는 강판 코코넛, 소금기 있는 치즈, 삶은 오리알을 토핑으로 얹는다. 최근에는 버터, 설탕, 크림치즈, 치즈스프레드 등을 추가하는 퓨전 Bibingka도 생겨났다.

Bibingka의 감성 – 왜 특별한가?

Bibingka는 단지 쌀가루와 우유, 설탕으로 만든 케이크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세대를 걸쳐 이어온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 있다. Simbang Gabi 기간 동안,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그 후 이른 아침 가족과 함께 먹는 Bibingka 한 조각은 의례의 마무리이자 보상이다.

그 부드러움은 따뜻한 이불 속의 포근함과도 같았고, 그 짭짤함은 새벽 공기 속의 생기를 닮아 있었고, 그 은은한 단맛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위로 같았다.

나는 그렇게, 종교와 무관한 나조차도 이 떡 안에서 어떤 신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Bibingka, 해외로 가다

오늘날 Bibingka는 필리핀 디아스포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중동 등지의 필리핀 커뮤니티에서는 성탄 시즌이 다가오면 각종 빵집과 음식점에서 Bibingka를 판매한다.

일부 셰프들은 이 전통 디저트를 변형해 ‘Bibingka Cheesecake’, ‘Mini Bibingka Tart’, ‘Bibingka Muffin’ 등으로 소개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음식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바나나잎의 그을음과 손에 묻어나는 따뜻한 촉감, 그리고 새벽 공기 속에서 입안으로 들어오던 그 풍미는, 여전히 필리핀 현지에서 경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