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나라별 음식/Philippines

Bicol Express – 불 위의 코코넛, 필리핀에서 가장 매운 사랑

아시아음식연구원 2025. 5. 14. 09:34

한입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하다. 그러나 수저는 다시 국물로 향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젓가락을 멈출 수 없는 매력. 그게 바로 **비콜 익스프레스(Bicol Express)**다.

이 음식은 필리핀 남부의 정열을 닮았다. 맵고, 뜨겁고, 부드럽고,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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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콜 익스프레스란?

Bicol Express는 코코넛 밀크에 칠리와 바고옹(새우 페이스트), 돼지고기를 넣고 졸인 매운 스튜다.

비콜 지역에서 유래한 요리로, 고추를 아낌없이 넣어 ‘필리핀에서 가장 매운 요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주재료: 돼지고기(보통 삼겹살), 그린 칠리, 코코넛 밀크, 바고옹(또는 간장)

보조 재료: 마늘, 양파, 생강, 약간의 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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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기원과 흥미로운 배경

이 요리의 이름은 의외로 철도 노선 이름에서 따왔다.

1970년대, 마닐라에 위치한 필리핀 문화센터의 요리사 Cecilia Kalaw가 고향인 비콜 요리를 마닐라 스타일로 소개하면서, 당시 마닐라에서 비콜까지 운행하던 기차 이름 ‘Bicol Express’를 따 요리 이름으로 붙였다.

이는 그만큼 이 요리가 빠르게, 강하게, 깊게 도착하는 맛의 열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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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방법

1. 기름 없이 마른 팬에 돼지고기를 볶아 기름을 뺀다.


2. 마늘, 양파, 생강을 넣고 함께 볶아 향을 낸다.


3. 칠리(보통 길쭉한 Finger Chili)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4. 바고옹 또는 간장으로 간을 하고, 코코넛 밀크를 부어 약한 불에 천천히 끓인다.


5. 국물이 졸아들고 고기에 양념이 깊이 배면 완성.



※ 비콜식은 고추를 통째로 10개 이상 넣으며, 물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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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구조

첫맛: 코코넛의 크리미한 부드러움

중간: 고추의 직선적인 매운맛과 새우 페이스트의 짭조름함

끝맛: 고기의 고소함과 칠리 오일의 매운 여운


비콜 익스프레스는 단순히 맵기만 한 음식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칠맛과 향신료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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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 정체성과 의미

비콜 사람들은 매운 것을 잘 먹기로 유명하다.

Bicol Express는 그런 지역성을 집약한 요리다.

자연재해가 잦은 환경에서도 강인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기질

태풍과 화산 속에서도 담대한 생활력

그리고 그들의 음식에 담긴 열정, 땀, 손맛


이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비콜인의 인생 요약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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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변형

Gulay na Bicol Express: 고기 없이 오로지 채소(보통 가지, 깻잎)로만 만든 버전

Seafood Bicol Express: 오징어, 새우, 홍합 등을 활용한 해산물 버전

Dry Bicol Express: 국물이 거의 없고 매운맛이 더 강조된 볶음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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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전파

미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의 필리핀 레스토랑에서 Bicol Express는 ‘매운 것을 원하는 외국인’에게 소개되는 첫 메뉴다.

매운 음식이 드문 필리핀 요리 중, 유일하게 스리라차나 김치처럼 세계적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요리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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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추억

비콜 출신들은 Bicol Express에 대해 말할 때 **“우리 엄마가 제일 잘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건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어릴 적 주방에서 풍기던 고추 냄새, 얼음물과 함께 먹던 밥, 매워서 눈물 흘리며 웃던 식탁의 기억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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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 불의 맛, 사랑의 표현

Bicol Express는 첫 맛보다 먹고 나서 오래 남는 맛이다. 그건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맵지만 위로가 되고, 강하지만 부드럽고,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한, 필리핀식 삶의 은유.

그게 바로 Bicol Expres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