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나라별 음식/Philippines

졸리비: 웃는 꿀벌 안에 숨겨진 필리핀의 자존심과 글로벌 전략

아시아음식연구원 2025. 5. 7. 04:40

졸리비는 단순한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아니다.
그것은 필리핀인의 정체성이고, 성장의 상징이며, 해외에서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다.
노란 꿀벌 마스코트와 달콤한 스파게티, 바삭한 프라이드치킨은 이 작은 동남아 국가의 국민적 감성과 세계화를 동시에 품은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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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된 이야기

졸리비는 1975년, 토니 탄 카크숑(Tony Tan Caktiong)이라는 중국계 필리핀인 사업가가 마닐라에서 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들이 간단한 식사 메뉴를 찾기 시작했고, 그는 버거, 스파게티, 프라이드치킨을 메뉴에 추가했다.
이후 1978년, 그는 기존 가게들을 졸리비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통합하며 패스트푸드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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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의 정면 승부

1981년, 맥도날드가 필리핀 시장에 상륙했다.
하지만 졸리비는 글로벌 브랜드의 공세에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필리핀인의 입맛과 정서에 맞춘 메뉴와 마케팅 전략으로 현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결국 졸리비는 맥도날드를 제치고 필리핀 내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필리핀 외식 산업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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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에게 졸리비란 무엇인가

졸리비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가족 나들이의 추억, 아이들의 생일파티, 첫 월급으로 부모에게 사드린 식사, 그리고 해외에서 그리운 고향의 냄새까지 담고 있다.
졸리비는 필리핀인의 일상과 감정, 가족과 문화가 응축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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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퍼져나간 꿀벌의 웃음

졸리비는 2024년 기준으로 필리핀을 포함해 전 세계 18개국에 1,5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등 필리핀 디아스포라가 많은 국가에 집중적으로 진출했다.
해외 졸리비 매장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이민자 커뮤니티의 결속 공간이자 문화적 정체성의 기지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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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의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

졸리비는 각국의 소비자 입맛에 맞춰 메뉴를 조정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Jolly Spaghetti, Chickenjoy, Burger Steak 등 필리핀식 메뉴를 유지하면서도, 소금 간을 약간 낮추고, 매운맛을 줄인다.
싱가포르에서는 나시르막 세트, 베트남에서는 새우튀김 라이스 같은 로컬 메뉴도 출시되며, 중동에서는 할랄 인증을 받은 닭고기를 사용한다.
이처럼 졸리비는 현지화를 하되, 필리핀 정체성을 유지하는 균형 전략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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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전통 음식과 패스트푸드의 절충

졸리비는 미국식 버거와 프라이드치킨을 기반으로 하지만, 스파게티나 조리 방식은 분명히 필리핀식이다.
단맛이 강조된 스파게티 소스, 쌀밥과 함께 제공되는 치킨, 진한 그레이비 소스는 서구의 형식 위에 필리핀의 맛과 정서를 얹은 구조다.
그 결과 졸리비는 미국식 패스트푸드를 필리핀식으로 해석한 유일무이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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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비의 한국 진출과 실패

졸리비는 과거 2000년대 중후반 한국에 매장을 오픈한 적이 있다.
서울 강남, 명동, 대학로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매장을 냈지만, 짧은 기간 내 철수하고 말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국 시장에선 이미 네네치킨, BBQ, 교촌 등 강력한 로컬 치킨 브랜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졸리비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고, 매장 위치가 필리핀인 거주 밀집지역과도 거리가 있었다

필리핀식 스파게티나 조리방식이 현지 소비자에게 낯설고 생소했다


결국 졸리비는 한국 시장에서 고전했고, 이후 장기간 동안 재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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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비 그룹의 반격: 컴포즈 커피 인수

하지만 2024년, 졸리비는 다시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졸리비 그룹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컴포즈 커피’의 지분 70%를 약 4,700억 원에 인수했다.
컴포즈 커피는 1,500원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가성비 전략과 로컬 기반의 빠른 확장성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2,600개가 넘는 매장을 확보한 브랜드다.

졸리비는 이 인수를 통해 한국 내 입지를 다시 다지고, 향후 졸리비 브랜드의 재도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단순히 커피 브랜드를 보유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시장의 소비자 성향, 상권 구조, 배달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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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비의 핵심 인기 메뉴

Chickenjoy: 바삭한 프라이드치킨과 그레이비 소스

Jolly Spaghetti: 달콤한 토마토 소스, 핫도그 슬라이스, 체다치즈

Burger Steak: 밥, 햄버그, 버섯 그레이비 소스 세트

Palabok Fiesta: 필리핀 전통 쌀국수에 해산물 소스 얹은 메뉴

Yum Burger: 필리핀식 단맛이 감도는 버거

Mango Peach Pie: 대표적인 디저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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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상의 의미

졸리비는 필리핀 사회에서 성공, 가족, 정체성, 미래를 상징한다.
어릴 적 졸리비 매장에서 생일파티를 했던 아이가, 이민자가 되어 미국 졸리비에 줄을 서고, 또 그 자녀가 졸리비에서 고향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것.
이것은 브랜드를 넘어 세대 간 정서적 전이와 문화적 연결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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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비의 다음 단계는 어디일까

졸리비는 이제 단지 필리핀 브랜드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소비자 감성을 이해하고, 로컬 문화를 존중하며, 자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드문 브랜드 전략의 결과다.

그리고 컴포즈 커피 인수는 단지 한국 진출이 아니라, 더 넓은 동아시아 시장에 대한 예열일지도 모른다.
졸리비는 지금도 느리지만 단단하게, 꿀벌처럼 전 세계에 그 미소를 퍼뜨리고 있다.